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(문단 편집) === 최후 === 셀레우코스가 패망하자 한니발은 타국을 전전하며 도망쳤다. 그는 우선 [[아르메니아]]로 도망갔다. 그런데 아르메니아 왕이 로마와 강화하자 다시 [[비티니아]]로 망명했다. 한니발은 비티니아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이 되었고 비티니아 해군을 지휘하여 [[페르가몬 왕국]]의 [[에우메네스 2세]]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. 그러나 로마의 세력이 어느덧 비티니아까지 미쳤다. [[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]]에서 활약했던 [[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]]가 비티니아에 망명한 한니발을 잡기 위해 비티니아로 파견되었다. 다만 그것이 플라미니누스의 독단인지, 원로원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. 당대에 플라미니누스의 행동이 과하다고 비판한 사람들이 많았다. 그러나 역시 원로원이 배후에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. 무엇보다 한니발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로마인도 적지 않았다. 결국 비티니아 왕 [[프루시아스 1세]]는 한니발을 넘겨주는 데 동의했지만 그 전에 한니발은 사망했다. 한니발이 죽은 정확한 연도와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.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183 ~ 181년 사이라고 추정되며, 가장 유명하고 유력한 설은 '''[[자살]]'''이다. 한니발이 자신이 로마에 넘겨진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[[마르마라 해]]의 해안가에서 독을 마시고 죽었다는 것이다.[* [[헤르만 괴링]]도 [[뉘른베르크 재판]] 이후 [[청산가리]]를 빼돌려 자살하기 전 유서에 한니발 장군과 같은 방식으로 죽기로 결심했다고 썼다.] 이처럼 한니발의 죽음에 대한 설은 후대의 인물인 [[플루타르코스]]가 특별히 정리할 정도로 [[로마 시대]]부터 논란거리였다. 한니발의 목숨을 거두러 찾아온 플라미니누스는 기원전 174년에 사망하였다. [[https://areyoukorean1.tistory.com/12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